델솔밸리의 황갈색 저녁 하늘 아래, 스티브 포겔의 집에 은은한 조명이 하나둘 들어왔다.
도시 외곽 주택가 특유의 고요함이 감돌았고, 멀리서 착륙하는 비행기의 엔진음이 간간이 귓가를 스쳤다.
오늘은 스티브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다.
뒷마당은 아직 손볼 곳이 많았지만, 주방만큼은 스티브의 자존심이었다.
직접 만든 가구는 아니지만, 그는 이 주방에서 손님들을 맞이할 상상을 하며 며칠을 설렜다.
“이참에 동료들도 초대해볼까?”
그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델솔밸리에서 다시 시작한 삶은 아직 조용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억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티 린도 초대 명단에 빠질 수 없었다.
처음 도착한 손님은 파티에 진심인 듯한 복장의 여성들이었다.
한쪽에선 이미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처음 만난 이들끼리도 금세 이야기꽃을 피웠다.
스티브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데는 자신 있다. 모자 속 웃음 많은 눈매는 그날 따라 더 부드러워 보였다.
부엌에서 티 린과 나란히 앉아 마주보며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티 린은 익숙하게 스티브의 말을 받아주었고, 그는 그런 티 린 앞에서 조금 더 수다스러워졌다.
티 린이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그릇을 내밀자, 스티브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응수했다.
둘 사이엔 아직 정의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지만, 그건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뒤편 거실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이들이지만, 오늘 밤만큼은 모두 스티브의 집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는 그 모습이 몹시 흐뭇했다. 가끔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자신의 삶에 여지를 내어주는 일이니까.
식탁 위에는 직접 만든 스튜와 작은 비스킷들이 놓여 있었고, 누군가는 티비에서 나오는 쇼를 보며 깔깔 웃었다.
스티브는 그런 풍경 속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듯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델솔벨리의 불빛은 아직 잠들 기미가 없었고, 밤공기는 기분 좋게 선선했다.
오늘은 그저 작은 집들이였을 뿐이지만, 스티브에게는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그가 만들어가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 조금씩, 사람들 속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스티브는
오랜만에 바비큐 파티도 하고, 동료들을 초대해 집들이도 하며
소박한 일상을 나름 만족스레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늦은 밤, 혼자 뒷마당에서 그릴을 켜던 스티브는
순식간에 불길에 휘말려버렸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혼자 소화기를 들어 불을 껐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 순간이 남긴 감정은 꽤 깊었다.
살아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걸 매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은 꽤 쓸쓸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날의 불길보다 더 뜨거웠던 외로움이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얼마 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생활비와 점점 무거워지는 집안 공기 속에서
그는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바로, 룸메이트를 들이기로 한 것.
처음 함께 살게 된 사람은
음악가 동료 제인 아므리와
아직은 직업이 잘 파악되지 않는, 어딘가 미스터리한 엘로이즈 히든스틱스였다.
제인은 평소 공연장에서도 마주치는 사이로,
요즘은 날씨 얘기와 함께 감성적인 주제를 곧잘 꺼내는 동료다.
엘로이즈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없는 시간이 더 많고,
가끔 씻는 걸 깜빡하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각기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한집에 살게 된 지금,
스티브는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어떤 의미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그릴에서 살아남은 그날 밤 이후로,
누군가와 함께 부대끼며 사는 하루가
조금 더 사람 냄새 난다는 것.
이 동네에서의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다.
음악 동료 제인 아므리와는 계속 함께 작업하며 유대감을 쌓아갔고, 룸메이트 엘로이즈는 여전히 씻는 걸 귀찮아했지만 그 나름대로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뭔진 아직 모르겠지만, 집에 붙어 있는 시간도 드물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편은 여전히 허전했다.
가끔 밤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준 케이가 떠오른다.
그 사람과의 이별은, 결국 내 선택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 일을 만든 건 베네사였다.
그녀가 준과의 사이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래서인지, 베네사를 다시 마주칠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사가 내 집 현관 앞에 나타났다.
밝은 얼굴로 선물 상자를 들고는 “이웃 간의 정은 이런 거죠~” 하며, 구미베어 팬케이크를 건넸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속으로는 손이 덜덜 떨렸다.
바로 그 베네사. 준과의 관계를 갈라놓았던 장본인.
그녀가 내 문 앞에 선 것도 모자라, 그날 저녁엔 뒷마당에서 멋대로 그릴을 꺼내 굽기까지 했다.
순간 불안한 예감이 스쳤고, 그건 빗나가지 않았다.
기름이 튀었는지, 불꽃이 치솟더니 그녀의 옷에 불이 붙었다.
베네사는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남편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나는 재빨리 소방서에 전화했고, 불길은 가까스로 진화됐다.
엘로이즈는 놀라서 울먹였고,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녀가 왜 우리 집에서, 왜 하필 그날 이런 짓을 벌인 걸까.
그날 따라 모든 게 더더욱 참기 힘들게 다가왔다.
결국 나는 이성을 잃었다.
“당장 꺼져, 베네사. 다시는 내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베네사는 당황한 얼굴로 물러났지만, 나는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저 작은 실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는,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쌓여온 감정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이 동네에선, 누구와는 가까이 지내고 누구와는 거리를 둬야 하는지—
그 경계를 더 이상 흐리게 두면 안 된다는 걸.
※ 이 일지는 계획된 스토리가 아닌, 심들의 자유의지에서 피어난 순간들을 기록한 관찰 일지입니다. 다만, 때때로 유저의 작은 바람이나 호기심이 개입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야기는 언제나 그들로부터 시작돼요. 그렇기에 더 예측할 수 없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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